지난 시간, 인류가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농업을 선택했다는 ‘신석기 혁명’의 이야기를 다뤘습니다. 그런데 이 기존의 학설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유적이 튀르키예에서 발견되었습니다.
“농사를 짓고 배가 불러야 신전을 짓지!”라는 우리의 상식을 깨고, “신전을 짓기 위해 농사를 시작했다”는 파격적인 가설을 제시한 괴베클리 테페. 인류 문명의 기원을 다시 쓰게 만든 이 미스터리한 돌기둥의 비밀을 600단어 이상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풀어냈습니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문명의 발생 순서는 대략 이렇습니다.
- 농사를 짓는다 (식량 확보)
- 사람들이 모여 마을을 이룬다 (정착)
- 남는 식량이 생기고 사회가 복잡해진다 (계급 발생)
- 비로소 신전과 같은 거대 건축물을 짓는다 (종교/예술)
즉, ‘배가 불러야 종교도 찾는다’는 논리였습니다. 하지만 1994년, 튀르키예 남동부의 황량한 언덕에서 발견된 유적 하나가 이 탄탄했던 학설을 와르르 무너뜨렸습니다. 스톤헨지보다 6,000년, 피라미드보다 7,000년이나 앞선 인류 최초의 거대 신전, 괴베클리 테페(Göbekli Tepe)의 등장입니다.
오늘은 고고학계를 충격에 빠뜨린 이 유적을 통해, 어쩌면 ‘종교’가 문명을 만든 진짜 원동력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1. 1만 2천 년 전의 불가능한 건축물
괴베클리 테페는 ‘배불뚝이 언덕’이라는 뜻입니다. 독일의 고고학자 클라우스 슈미트(Klaus Schmidt)가 이곳을 처음 발굴했을 때, 그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습니다.
땅속에서는 높이 5.5미터, 무게 10~20톤에 달하는 거대한 T자형 돌기둥 수십 개가 원형으로 늘어선 채 발견되었습니다. 탄소 연대 측정 결과, 이 유적이 만들어진 시기는 무려 기원전 9,600년경. 아직 인류가 토기도 만들지 못했고, 금속 도구는커녕 바퀴조차 없었던 까마득한 옛날이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건설의 주체였습니다. 주변에는 집터나 농경의 흔적이 전혀 없었습니다. 즉, 이곳을 지은 사람들은 농부가 아니라, 숲을 떠돌던 ‘수렵채집인’들이었습니다.
2. 미스터리한 T자형 돌기둥의 정체
이 거대한 돌기둥들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T자 모양은 머리와 몸통을 가진 ‘사람(신)’의 형상을 단순화한 것으로 보입니다. 돌기둥의 측면에는 팔과 손이 조각되어 있고, 허리춤에는 여우 가죽으로 만든 띠가 둘러져 있습니다.
돌기둥 표면에는 사자, 전갈, 뱀, 멧돼지, 독수리 등 위협적인 동물들이 매우 정교하게 돋을새김(Relief) 되어 있습니다. 이는 라스코 동굴 벽화에 그려진 ‘사냥감(소, 말)’들과는 분위기가 다릅니다. 먹기 위한 동물이 아니라, 공포와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수호신’이나 ‘토템’을 형상화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3. “신전이 도시보다 먼저다” (패러다임의 전환)
수렵채집인들은 어떻게 이 거대한 공사를 해냈을까요? 20톤짜리 돌을 채석장에서 떼어내 언덕 위로 옮기고 세우려면 최소 500명 이상의 인력이 필요합니다.
클라우스 슈미트는 여기서 ‘종교가 농업을 낳았다’는 혁명적인 가설을 제시합니다.
- 흩어져 살던 수렵채집인들이 종교 의식을 치르기 위해 괴베클리 테페로 모여들었다.
- 수백 명의 노동자와 순례자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막대한 양의 식량이 필요했다.
- 주변의 야생 곡물을 채집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자, ‘식량을 조달하기 위해’ 근처에서 야생 밀을 재배하기 시작했다.
- 결국 신전을 짓고 유지하려는 열망이 농업의 시작(신석기 혁명)을 촉발했다.
실제로 괴베클리 테페 근처의 카라카다그(Karacadağ) 산은 유전학적으로 재배 밀의 조상인 야생 밀(Einkorn)의 발원지와 매우 가깝습니다. 이 가설이 맞다면, 인류 문명의 시작은 ‘배고픔’이 아니라, 신을 찾고자 했던 인간의 ‘마음’과 ‘상상력’이었습니다.
4. 고대인들의 축제와 만남의 광장
이곳은 상시 거주하는 마을이 아니라, 특별한 시기에만 모이는 ‘순례지’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발굴 현장에서는 엄청난 양의 가젤 뼈와, 맥주를 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거대한 석회암 통들이 발견되었습니다.
서로 다른 부족들이 이곳에 모여 거대한 돌을 함께 세우고, 고기와 술을 나눠 먹으며 축제를 벌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정보와 기술이 교환되었고, 낯선 사람들 간의 ‘사회적 네트워크’가 형성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도시와 국가로 발전하는 ‘복잡한 사회’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5. 의도적인 매립: 왜 묻어버렸을까?
괴베클리 테페의 가장 큰 미스터리는 그 최후에 있습니다. 약 1,500년 정도 사용된 후, 기원전 8,000년경에 사람들은 이 웅장한 신전을 흙과 자갈로 ‘일부러’ 덮어서 묻어버렸습니다.
전쟁으로 파괴되거나 자연적으로 무너진 것이 아니라, 마치 타임캡슐처럼 정성스럽게 매립한 것입니다.
- 종교적 신념이 바뀌었기 때문일까요?
- 아니면 농경 사회로 완전히 진입하면서, 수렵채집 시대의 성소가 더 이상 필요 없게 된 것일까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덕분에 이 유적은 풍화되지 않고 완벽한 상태로 보존되어 1만 년 후의 우리에게 메시지를 전할 수 있었습니다.
6. 결론: 마음이 물질을 창조하다
괴베클리 테페는 인간이 단순히 환경에 적응하는 존재가 아님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신을 믿었고, 그 믿음을 증명하기 위해 불가능해 보이는 거대한 돌을 세웠습니다. 그 강렬한 정신적 열망이 농업이라는 고된 노동을 감수하게 했고, 마침내 문명이라는 거대한 탑을 쌓아 올리게 했습니다.
문명의 시작은 ‘빵’이 아니라 ‘기도’였습니다.
이제 이 신전이 있었던 곳, 그리고 농업이 처음 시작된 바로 그 땅. 인류 최초의 문명이 싹튼 지리적 배경인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 대해 다음 시간에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참고 문헌 및 더 읽어보기]
이 포스팅은 내셔널 지오그래픽과 유네스코 세계유산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 UNESCO World Heritage Centre – Göbekli Tepe
- 유네스코에 등재된 괴베클리 테페의 등재 기준과 유적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에 대한 공식 설명입니다.
- National Geographic – Birth of Religion
- 괴베클리 테페 발굴 현장 사진과 클라우스 슈미트의 인터뷰, 그리고 종교 기원설을 다룬 심층 기사입니다.
- Smithsonian Magazine – Gobekli Tepe: The World’s First Temple?
- 유적의 발견 과정과 고고학적 의의, 그리고 수렵채집인들의 사회 구조에 대한 분석을 담고 있습니다.
[이전 글 보기] 28. 신석기 혁명: 인류는 왜 편한 수렵채집을 버리고 고된 농사를 선택했나?
[다음 포스팅 예고] 30. 비옥한 초승달 지대 – 왜 문명은 여기서 시작되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