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변화 역사의 시작, 홀로세(Holocene): 빙하가 녹고 인류의 삶이 바뀌다

지구의 역사를 통틀어 가장 드라마틱한 변화의 순간을 꼽으라면, 아마도 약 1만 1,700년 전일 것입니다. 수만 년 동안 지구를 꽁꽁 얼려버렸던 마지막 빙하기(플라이스토세)가 마침내 막을 내리고, 따뜻하고 안정적인 새로운 지질 시대인 홀로세(Holocene, 현세)가 시작된 시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 ‘지구 온난화’를 걱정하지만, 인류 문명의 태동기에도 거대한 기후 변화 역사가 있었습니다. 단, 그때는 재앙이 아니라 인류가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하지만 그 기회는 혹독한 적응의 대가를 요구했습니다.

오늘은 빙하가 녹아내리던 그 격동의 시기, 지구가 어떻게 변했고 인류는 살아남기 위해 어떤 선택을 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1. 1,000년 만에 찾아온 봄

약 1만 2천 년 전, 지구 기온은 롤러코스터를 탔습니다. 잠시 따뜻해지나 싶더니 다시 급격히 추워지는 ‘영거 드리아스(Younger Dryas)’기를 거친 후, 기적처럼 온도가 급상승하기 시작했습니다. 불과 수십 년 만에 지구 평균 기온이 5~10도 가까이 올랐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계절의 변화가 아니었습니다. 행성의 체질이 바뀌는 거대한 기후 변화 역사의 전환점이었습니다. 얼음으로 덮여 있던 북반구에 숲이 우거지고, 강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춥고 건조했던 기후는 따뜻하고 습윤하게 변했고, 생명체가 살아가기에 더없이 좋은 환경이 조성되었습니다. 지질학자들은 이때부터 현재까지를 ‘완전히 새로운(Holo) 시대(Cene)’라는 뜻의 홀로세라고 부릅니다.

2. 지도가 다시 그려지다: 해수면 상승의 충격

하지만 따뜻함 뒤에는 무시무시한 대가가 따랐습니다. 거대한 빙하가 녹으면서 엄청난 양의 물이 바다로 쏟아져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해수면은 빙하기 때보다 무려 100m 이상 상승했습니다. 이로 인해 세계 지도는 완전히 다시 그려졌습니다.

  • 베링 육교의 소멸: 아시아와 아메리카를 잇던 베링기아가 물에 잠겨 베링 해협이 되었습니다. 신대륙으로 간 인류는 고립되었습니다.
  • 도거랜드(Doggerland)의 침수: 영국과 유럽 대륙은 원래 하나로 연결된 땅(도거랜드)이었으나, 물이 차오르며 영국은 섬이 되었습니다.
  • 동남아시아의 변화: 거대한 순다(Sunda) 대륙이 물에 잠겨 지금의 인도네시아와 필리핀 같은 수만 개의 섬으로 쪼개졌습니다.

해안가에 살던 수많은 부족은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고 내륙으로, 혹은 더 높은 곳으로 쫓겨가야만 했습니다. 이것은 인류가 겪은 최초의 ‘기후 난민’ 사태였을지도 모릅니다.

3. 숲의 등장과 사냥감의 변화

육지의 풍경도 달라졌습니다. 탁 트인 초원(매머드 스텝)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빽빽한 밀림과 숲이 채웠습니다.

환경이 변하자 동물들도 바뀌었습니다.

  • 사라진 거인들: 탁 트인 곳을 좋아하던 매머드, 털코뿔소 같은 거대 동물은 멸종하거나 북쪽 끝으로 사라졌습니다.
  • 새로운 사냥감: 숲속을 날렵하게 뛰어다니는 사슴, 멧돼지, 토끼 같은 중소형 동물들이 번성했습니다.

이것은 인류에게 큰 위기였습니다. 느릿느릿한 매머드를 향해 떼로 달려들어 창을 던지던 예전의 사냥 방식은 숲속의 날쌘 동물들에게 통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인류는 생존을 위해 사냥 기술을 완전히 뜯어고쳐야 했습니다. (이 고민은 훗날 ‘활’의 발명으로 이어집니다.)

4. 중석기 시대(Mesolithic): 강과 바다로 눈을 돌리다

이 혼란스러운 과도기를 고고학에서는 중석기 시대라고 부릅니다. 구석기(수렵채집)에서 신석기(농경)로 넘어가는 징검다리 시기입니다.

대형 사냥감이 줄어들자 인류는 숲뿐만 아니라 물가로 눈을 돌렸습니다. 따뜻해진 날씨 덕분에 강과 바다에는 물고기와 조개가 넘쳐났기 때문입니다.

  • 패총(조개무지): 이 시기 유적지에서는 엄청난 양의 조개껍데기 무덤이 발견됩니다.
  • 낚시 도구: 작살과 그물, 낚싯바늘이 정교하게 발달하기 시작했습니다.

인류는 이제 고기만 먹는 육식 위주의 식단에서 벗어나, 물고기, 조개, 도토리, 나무 열매 등 먹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채집하는 ‘광범위한 식량 혁명(Broad Spectrum Revolution)’을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거대한 기후 변화 역사에 적응하는 사피엔스의 유연함이었습니다.

5. 정착의 시작: 농사 없이도 정착하다

풍부해진 식량 자원은 인류의 생활 방식에도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먹을 것이 널려 있는 강가나 해안가에서는 굳이 힘들게 이동 생활을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농사를 짓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한곳에 머물며 마을을 이루고 사는 ‘채집 정착민’들이 등장했습니다. 이들은 훗날 농경 사회로 나아가는 중요한 디딤돌이 되었습니다.

6. 결론: 위기를 기회로 만든 적응력

홀로세의 시작은 인류에게 축복이자 시련이었습니다. 빙하가 녹아 삶의 터전이 물에 잠기고, 거대한 사냥감이 사라지는 위기 속에서도 인류는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들은 숲으로 들어가 작고 빠른 짐승을 잡는 법을 연구했고, 강으로 나가 그물을 던졌으며, 다양한 식물을 먹거리로 개발했습니다. 이 치열한 적응의 과정이 있었기에 인류는 멸종하지 않고 다음 단계로 도약할 수 있었습니다.

변화된 환경은 또 다른 만남을 주선했습니다. 숲이 우거지고 먹이를 찾는 동물이 인간의 마을 근처를 기웃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인류와 가장 먼저 친구가 된 동물, ‘개의 가축화’ 이야기를 통해 인간과 동물의 아름다운 동행을 살펴보겠습니다.


[참고 문헌 및 더 읽어보기]

이 포스팅은 지질학적 시대 구분과 고고학적 기후 연구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1. Britannica – Holocene Epoch
    • 1만 1,700년 전 시작된 현세(Holocene)의 정의와 환경 변화, 생태계의 특징을 설명한 백과사전 자료입니다.
  2. National Geographic – Doggerland – The Europe That Was
    • 해수면 상승으로 사라진 유럽의 아틀란티스, ‘도거랜드’의 지도와 역사를 다룬 기사입니다.
  3. NOAA – Climate Change History
    • 과거의 기후 변화 데이터를 통해 현재의 기후 위기를 조망하는 미국 해양대기청의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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