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둔하고 멍청하거나, 야만적인 사람을 놀릴 때 “네안데르탈인 같다”는 표현을 쓰곤 합니다. 20세기 초반만 해도 교과서나 박물관에 묘사된 그들의 모습은 구부정한 등에 털이 북슬북슬하고, 몽둥이를 든 채 ‘우가우가’만 외치는 미개한 원시인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21세기 과학 기술, 특히 유전자 분석 기술의 발달은 이들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습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호모 사피엔스(현생 인류)의 가장 가까운 사촌이자, 약 40만 년 동안 유럽과 서아시아를 지배했던 빙하기의 제왕 네안데르탈인(Neanderthals)입니다. 과연 그들은 정말 우리보다 멍청해서 멸망했을까요?

1. 빙하기에 최적화된 ‘보디빌더’
네안데르탈인은 약 40만 년 전부터 4만 년 전까지, 혹독한 추위가 몰아치던 유럽과 중동 지역에서 살았습니다. 그들의 신체는 추위를 견디기 위해 완벽하게 개조되어 있었습니다.
- 다부진 체격: 키는 우리보다 약간 작았지만(남성 평균 165cm), 뼈 굵기와 근육량은 현대 보디빌더 수준이었습니다. 이는 열 손실을 줄이고 거친 사냥을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 큰 코: 차가운 공기를 들이마실 때 폐로 들어가기 전 덥히고 습기를 더하기 위해 코가 매우 크고 넓었습니다.
- 짧은 팔다리: 추운 지방의 동물일수록 말단 부위가 짧아진다는 ‘앨런의 법칙’을 충실히 따르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그들의 ‘뇌 용량‘입니다. 네안데르탈인의 평균 뇌 용량은 약 1,450cc로, 현대인(약 1,350cc)보다 오히려 더 컸습니다! 물론 뇌가 크다고 무조건 더 똑똑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들이 ‘머리가 나빠서’ 멸망했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잃게 됩니다.
2. 그들에게도 ‘문화’와 ‘마음’이 있었다
그들이 멍청한 짐승이 아니었다는 증거는 곳곳에서 발견됩니다.
① 무스티에 석기 (Mousterian tools)
그들은 ‘르발루아 기법’이라는 매우 복잡한 공정을 통해 정교한 석기를 만들었습니다. 돌의 모양을 미리 계산하고 다듬어야만 만들 수 있는 기술로, 높은 수준의 계획성과 지능이 필요합니다.
② 최초의 장례 문화?
이라크 샤니다르 동굴(Shanidar Cave)에서는 꽃가루가 가득한 흙 위에서 네안데르탈인의 뼈가 발견되었습니다. 일부 학자들은 이를 두고 그들이 죽은 자를 위해 꽃을 바치고 슬퍼할 줄 아는 ‘감정’을 가진 존재였다고 해석합니다.
③ 약자를 돌보는 사회
프랑스 라 샤펠 오 생(La Chapelle-aux-Saints)에서 발견된 노인의 화석은 이빨이 다 빠지고 관절염이 심했습니다. 혼자서는 사냥도, 씹기도 불가능한 상태였지만 그는 노년까지 생존했습니다. 이는 동료들이 그에게 부드러운 음식을 씹어서 먹여주고 보호해 주었다는, 즉 ‘복지’와 ‘배려’가 존재하는 사회였음을 보여줍니다.
3. 충격적 진실: 내 안에 네안데르탈인이 있다
2010년, 스반테 페보(Svante Pääbo) 박사가 이끄는 막스 플랑크 연구소 팀은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연구 결과를 발표합니다. 바로 네안데르탈인 게놈(유전자) 프로젝트의 결과였습니다.
오랫동안 학계는 호모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을 일방적으로 학살하고 몰아냈다고 믿었습니다. 두 종 사이의 교류는 없었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DNA 분석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아프리카인을 제외한 현대인(유럽인, 아시아인)의 유전자 중 약 1~4%는 네안데르탈인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약 6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가 아프리카를 떠나 중동 지역에 도착했을 때, 그곳에 먼저 살고 있던 네안데르탈인과 마주쳤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 싸우기만 한 것이 아니라, ‘사랑‘을 나누고 자식을 낳았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그들을 멸종시킨 것이 아니라, 그들을 우리 안으로 흡수했습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의 몸속에도 빙하기 사냥꾼의 피가 흐르고 있을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면역력, 피부색, 심지어 우울증 관련 유전자까지 그들에게서 왔다는 연구가 있습니다.)
4.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사라졌나?
그렇다면 그토록 강인하고 지적이었던 그들은 왜 약 4만 년 전, 화석 기록에서 자취를 감췄을까요? 단 하나의 원인보다는 여러 악재가 겹쳤을 가능성이 큽니다.
- 쪽수에서 밀렸다 (인구 경쟁): 호모 사피엔스는 네안데르탈인보다 번식력이 좋았거나, 사회적 네트워크가 더 거대했습니다. 100명이 뭉친 사피엔스 집단과 20명이 뭉친 네안데르탈인 집단이 경쟁하면 승패는 뻔합니다.
- 기후 변화: 4만 년 전 유럽의 기후는 극도로 불안정하게 변했습니다. 숲이 사라지고 초원이 늘어나면서, 숲에서 매복 사냥을 하던 네안데르탈인의 사냥 방식이 통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반면 던지는 창(투창기)을 쓰던 사피엔스는 초원에서도 사냥을 잘했습니다.
- 근친혼과 유전적 약화: 발견된 화석들의 유전자를 분석해 보면 근친혼의 흔적이 많이 보입니다. 고립된 소규모 집단끼리 살다 보니 유전적 다양성이 떨어져 질병이나 환경 변화에 취약해졌을 것입니다.
5. 결론: 그들은 실패한 인류인가?
네안데르탈인은 멸종했지만, ‘실패작’이라고 부를 수는 없습니다. 그들은 우리 현생 인류보다 훨씬 더 오랜 기간(약 40만 년) 동안 혹독한 빙하기 유럽을 지배했던 성공적인 종이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우리 호모 사피엔스와 섞여 우리의 유전자 속에 영원히 살아남았습니다. 어쩌면 그들은 낯선 이방인(사피엔스)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역사 속으로 스며든 우리의 ‘잊혀진 형제’일지도 모릅니다.
다음 시간에는 네안데르탈인의 형제이자, 시베리아 동굴에서 손가락 뼈 하나로 존재를 알린 신비의 인류, **’데니소바인(Denisovans)’**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참고 문헌 및 더 읽어보기]
이 포스팅은 2022년 노벨상을 수상한 고유전학 연구 결과를 반영했습니다.
- The Nobel Prize (2022) – Svante Pääbo: Facts
- 네안데르탈인 게놈을 해독하여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스반테 페보 박사의 업적 소개입니다.
- Max Planck Institute for Evolutionary Anthropology – The Neandertal Genome Project
- 네안데르탈인 유전자 연구를 주도한 연구소의 공식 프로젝트 페이지입니다.
- Smithsonian Human Origins – Homo neanderthalensis
- 네안데르탈인의 신체적 특징, 도구, 생활상에 대한 종합적인 정보를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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