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석기 혁명: 인류는 왜 편한 수렵채집을 버리고 고된 농사를 선택했나?

약 1만 년 전, 지구상에는 두 종류의 인간이 공존했을지도 모릅니다. 숲에서 사슴을 쫓고 열매를 따며 하루 4시간만 일하고 나머지 시간엔 낮잠을 자는 ‘수렵채집인’. 그리고 뜨거운 땡볕 아래서 하루 종일 밭을 갈고, 물을 길어 나르며 허리가 휘도록 일하는 ‘농부’.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누구나 전자를 택할 것 같습니다. 영양 섭취도 골고루 하고, 자유롭고, 스트레스도 적으니까요. 하지만 인류의 역사는 후자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고고학자 고든 차일드(V. Gordon Childe)는 이 거대한 변화를 가리켜 ‘신석기 혁명(Neolithic Revolution)’이라고 명명했습니다. 오늘은 인류가 왜 편안한 에덴동산(수렵채집)을 제 발로 걸어 나와, 고단한 노동의 굴레(농업)를 쓰게 되었는지 그 미스터리를 파헤쳐 봅니다.

1. 진보인가, 함정인가?

우리는 오랫동안 농업의 시작을 ‘지능의 승리’라고 배웠습니다. 인류가 똑똑해져서 자연을 통제하게 되었고, 그 덕분에 삶이 윤택해졌다고 말이죠.

하지만 유발 하라리는 그의 저서 <사피엔스>에서 충격적인 주장을 펼칩니다. “농업 혁명은 역사상 최대의 사기다.”

초기 농부들의 유골을 분석해 보면 수렵채집인보다 키가 작고, 영양실조에 시달렸으며, 관절염과 디스크 같은 노동병을 앓았습니다. 식단은 단조로워졌고(탄수화물 과다), 흉년이 들면 떼죽음을 당했습니다. 개체 수로 보면 인류가 승리한 것이 맞지만, 개인의 행복도 측면에서는 오히려 삶의 질이 떨어진 셈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농사를 지었을까요?

2. 돌아올 수 없는 다리: 기후와 인구압

지난 26번째 포스팅(나투프 문화)에서 언급했듯, 농업은 선택이 아니라 ‘강요된 적응’이었습니다.

① 영거 드리아스의 충격

따뜻하던 지구가 갑자기 추워지고 건조해지는 기후 위기(영거 드리아스기)가 닥치자, 지천에 널려 있던 야생 곡물과 동물들이 사라졌습니다. 정착 생활에 익숙해져 있던 사람들은 굶어 죽지 않기 위해 남은 씨앗을 심고 물을 주며 인위적으로 식량을 늘려야만 했습니다.

② 인구압(Population Pressure)

한번 농사를 지어 식량이 늘어나자,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수렵채집으로는 1제곱킬로미터당 몇 명밖에 먹여 살릴 수 없지만, 농업은 100명을 먹여 살릴 수 있습니다. 늘어난 인구는 더 많은 식량을 요구했고, 더 많은 농사를 지어야 했습니다. 이제 인류는 다시는 수렵채집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숲으로 돌아가기엔 이미 식구가 너무 많아져 버린 것입니다.

3. 밀(Wheat)이 인간을 길들이다?

진화생물학적 관점에서 보면 주객이 전도된 상황일 수도 있습니다. 1만 년 전, 밀은 중동의 일부 지역에만 자라던 잡초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전 세계 경작지를 뒤덮고 있습니다.

밀은 혼자서는 번식할 수 없습니다. 바위도 골라내줘야 하고, 물도 줘야 하고, 잡초도 뽑아줘야 하고, 해충도 막아줘야 합니다. 이 모든 시중을 든 건 바로 ‘인간’입니다. 인간은 밀을 널리 퍼뜨리기 위해 등골이 휘도록 일했습니다. 하라리의 말처럼, 인간이 밀을 길들인(Domesticate) 것이 아니라, 밀이 인간을 길들인 것일지도 모릅니다.

4. 잉여 생산물, 판도라의 상자를 열다

비록 개인의 삶은 고달파졌지만, 신석기 혁명은 인류 사회에 엄청난 파급력을 가져왔습니다. 핵심은 먹고 남는 식량, 즉 ‘잉여 생산물(Surplus)’입니다.

  • 분업의 시작: 모두가 식량을 구하러 다닐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누군가는 농사만 짓고, 누군가는 도자기만 굽고, 누군가는 무기만 만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전문가의 탄생)
  • 계급의 발생: 남는 식량을 창고에 쌓아두면서, 그것을 관리하고 분배하는 권력자가 생겼습니다. 평등했던 원시 공동체는 무너지고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나뉘었습니다.
  • 국가의 탄생: 땅을 지키기 위해 성벽을 쌓고 군대를 만들면서 초기 국가가 형성되었습니다.

5. 결론: 문명의 대가

신석기 혁명은 인류를 자연의 섭리에서 떼어내어 인공적인 문명의 세계로 밀어 넣었습니다. 우리는 굶주림의 공포를 어느 정도 해결했지만, 그 대가로 빈부 격차, 계급 갈등, 전염병, 그리고 끝없는 노동을 떠안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스마트폰, 아파트, 자동차… 이 거대한 문명은 1만 년 전, 뙤약볕 아래서 잡초를 뽑기로 결심했던 선조들의 땀방울 위에 세워진 탑입니다.

그런데 잠깐,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또 다른 변화가 일어납니다. 바로 거대한 신전을 짓기 시작한 것입니다. 배도 고픈데 왜 신전부터 지었을까요? 다음 시간에는 농경보다 종교가 먼저였다는 파격적인 유적, ‘괴베클리 테페’로 떠나보겠습니다.


[참고 문헌 및 더 읽어보기]

이 포스팅은 재러드 다이아몬드와 유발 하라리의 관점을 중심으로 구성되었습니다.

  1. Jared Diamond – The Worst Mistake in the History of the Human Race
    • ‘총, 균, 쇠’의 저자 재러드 다이아몬드가 농업 혁명을 인류 최악의 실수라고 주장한 유명한 에세이입니다.
  2. Yuval Noah Harari – Sapiens: A Brief History of Humankind
    • 농업 혁명을 ‘밀의 함정’과 ‘사기’로 해석한 챕터는 이 책의 백미입니다.
  3. National Geographic – The Development of Agriculture
    • 농업의 기원과 전파 과정, 그리고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 대한 지리적 정보를 제공합니다.

[이전 글 보기] 27. 선사 시대 낚시와 최초의 배: 인류, 강과 바다로 나아가다 

[다음 포스팅 예고] 29. 괴베클리 테페 (Göbekli Tepe) – 종교가 문명을 만들었나?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