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투프 문화, 인류학의 미스터리: 농사짓기 전부터 정착한 사람들

우리는 학교에서 이렇게 배웁니다. “인류는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이동 생활을 멈추고 한곳에 정착했다.” (농업 → 정착)

하지만 고고학의 발굴 성과는 이 오랜 상식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습니다. 농사를 짓기는커녕 여전히 야생 동물을 사냥하고 열매를 따 먹던 시절에, 이미 돌로 집을 짓고 수백 명이 모여 사는 마을이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이 미스터리한 문명의 주인공은 바로 나투프 문화(Natufian Culture) 사람들입니다. 오늘은 농업 혁명의 전야제이자, 인류가 처음으로 ‘집’이라는 개념을 갖게 된 그 현장으로 가보겠습니다.

1. 레반트의 풍요로운 수렵채집인들

나투프 문화는 약 1만 5,000년 전부터 1만 1,500년 전까지, 지중해 동부 연안인 ‘레반트(Levant)’ 지역(오늘날의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요르단, 시리아 일대)에서 번성했습니다.

당시 이 지역은 ‘비옥한 초승달 지대’의 일부로, 기후가 온화하고 먹거리가 그야말로 넘쳐나는 낙원이었습니다.

  • 동물: 가젤(Gazelle) 떼가 초원을 뒤덮었습니다.
  • 식물: 야생 밀, 보리, 콩, 견과류(피스타치오, 도토리)가 지천에 널려 있었습니다.

먹을 것이 사방에 널려 있으니 굳이 힘들게 짐을 싸서 이동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동굴에서 나와 양지바른 언덕에 돌을 쌓아 집을 짓고 눌러앉았습니다. 학자들은 이들을 가리켜 ‘풍요로운 수렵채집인(Affluent Foragers)’이라고 부릅니다. 인류 역사상 최초의 정착 생활은 농업이 아니라, 자연의 풍요로움 덕분에 가능했습니다.

2. 낫(Sickle)의 발견: 농사의 징조?

나투프 문화 유적지에서는 아주 독특한 석기들이 발견됩니다. 바로 뼈로 만든 손잡이에 날카로운 잔석기(세석기)를 박아 만든 ‘낫(Sickle)’입니다.

이 낫의 날 부분을 현미경으로 관찰했더니 반짝반짝한 광택이 발견되었습니다. 이를 ‘곡물 광택(Sickle sheen)’이라고 합니다. 벼과 식물의 줄기에 있는 규소 성분 때문에, 풀을 오랫동안 베면 돌날이 닳아서 반짝거리게 되는 현상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들이 농사는 짓지 않았지만, 야생 밀과 보리밭에서 엄청난 양의 곡물을 ‘수확’하고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그들은 야생 곡물을 베어다가, 무거운 갈판과 갈돌(Mortar and Pestle)로 껍질을 벗기고 가루를 내어 먹었습니다.

이 무거운 돌절구들은 그들이 이동하지 않고 한곳에 살았다는 강력한 증거이기도 합니다. 유목민은 수십 킬로그램짜리 돌덩이를 들고 다닐 수 없으니까요.

3. 사후 세계와 최초의 반려견

정착 생활은 사람들의 정신세계도 바꾸어 놓았습니다. 이동 생활을 할 때는 시신을 길가에 묻거나 두고 떠났지만, 정착민들은 자신이 사는 집 바닥 아래에 조상을 묻었습니다. “여기는 우리 땅이고, 조상님이 우리를 지켜준다”는 영역 의식이 생긴 것입니다.

특히 이스라엘의 아인 말라하(Ein Mallaha) 유적에서는 1만 2,000년 전의 무덤 하나가 전 세계를 감동시켰습니다. 한 노인이 강아지를 팔로 감싸 안은 채 함께 묻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난 24번째 포스팅에서 다룬 ‘개의 가축화’의 결정적 증거입니다.) 나투프 문화 사람들은 개를 단순히 경비견으로 쓴 것이 아니라, 저승까지 함께 데려갈 만큼 깊은 유대감을 나누는 가족으로 여겼습니다.

4. 위기가 닥치다: 영거 드리아스(Younger Dryas)

영원할 것 같았던 나투프의 낙원은 약 1만 2,900년 전, 갑작스러운 기후 재앙으로 끝이 납니다. 따뜻하던 지구가 갑자기 빙하기처럼 추워지고 건조해진 ‘영거 드리아스기’가 찾아온 것입니다.

  • 숲의 후퇴: 풍요롭던 숲과 초원이 말라죽고 사막화가 진행되었습니다.
  • 식량 고갈: 지천에 널려있던 야생 밀과 가젤이 사라졌습니다.

이제 나투프 문화 사람들은 선택의 기로에 섰습니다.

  1. 다시 짐을 싸서 떠돌이 생활로 돌아갈 것인가?
  2. 아니면 부족해진 식량을 인위적으로 늘릴 방법을 찾을 것인가?

이미 정착의 안락함과 늘어난 인구(대가족)를 맛본 그들은 다시 떠나는 대신, 두 번째 길을 선택합니다. 바로 줄어드는 야생 곡물의 씨앗을 받아다가 땅에 심고, 물을 주고, 가꾸기 시작한 것입니다.

5. 결론: 농업은 발명이 아니라 ‘적응’이었다

나투프 문화는 수렵채집(구석기)과 농경(신석기) 사이를 잇는 잃어버린 고리입니다. 그들은 농사를 짓고 싶어서 지은 게 아니었습니다. 자연이 주던 공짜 점심이 끝나자, 굶어 죽지 않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시작한 고육지책이 바로 ‘농업’이었습니다.

결국 농업 혁명은 천재적인 발명이 아니라, 기후 변화라는 위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인류의 처절한 적응(Adaptation) 과정이었습니다.

이 위대한 선택 덕분에 인류는 기아에서 벗어났고 문명을 건설했지만, 동시에 고된 노동과 계급이라는 새로운 굴레를 쓰게 됩니다. 다음 시간에는 인류가 물 위로 진출하여 활동 반경을 넓힌 이야기, ‘최초의 배와 낚시’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참고 문헌 및 더 읽어보기]

이 포스팅은 최신 고고학 발굴 성과를 바탕으로 재구성되었습니다.

  1. Britannica – Natufian Culture
    • 나투프 문화의 정의, 분포 지역, 생활상, 그리고 인류 역사에서의 중요성을 정리한 백과사전 자료입니다.
  2. Nature Scientific Reports (2016) – Earliest evidence for social endogamy in the Natufian
    • 나투프 사람들의 장례 풍습과 유전자 분석을 통해 초기 정착 사회의 구조를 밝힌 논문입니다.
  3. Smithsonian Magazine – The Natufians: The First Farmers
    • 농사를 짓기 전 정착 생활을 먼저 시작했던 나투피안들의 삶과 그들이 남긴 유산을 흥미롭게 다룬 기사입니다.

[이전 글 보기] 25. 활과 화살의 발명 – 작아진 사냥감을 잡기 위한 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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