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기원 가설: 수다 떨기(뒷담화)가 인류를 구했다?

우리는 눈을 뜨자마자 말을 하고, 카카오톡을 보내고, 잠들기 전까지 누군가와 대화를 나눕니다. 공기처럼 너무나 당연해서 평소에는 의식조차 못 하는 능력, 바로 언어입니다.

그런데 고고학자들에게 언어의 기원은 가장 풀기 어려운 숙제 중 하나입니다. 돌도끼나 뼈는 화석으로 남지만, ‘말소리’는 화석으로 남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866년 파리 언어 학회는 “언어의 기원에 대한 논문 투고를 금지한다”는 극단적인 조치를 취하기도 했습니다. 증거 없는 상상만 난무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과학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인류가 왜 입을 열기 시작했는지에 대한 재기 발랄한 가설들, 그중에서도 가장 유력한 ‘수다 떨기(Gossip)‘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1. 고전적인 가설들: 멍멍, 쉿, 영차!

오랫동안 학자들은 언어가 단순한 소리에서 발전했다고 믿었습니다.

  • 멍멍설 (Bow-wow theory): 동물의 울음소리나 자연의 소리를 흉내 내다가 언어가 되었다는 설. (예: 뻐꾸기, 쾅)
  • 앗!설 (Pooh-pooh theory): 고통, 기쁨, 놀라움 등 감정적인 비명이나 감탄사에서 시작되었다는 설. (예: 아야!, 오!)
  • 영차설 (Yo-he-ho theory): 무거운 것을 들거나 함께 노동할 때 호흡을 맞추기 위해 낸 리듬 있는 소리에서 유래했다는 설.

하지만 이 가설들은 결정적인 한계가 있습니다. 이런 소리들은 감정이나 상태를 전달할 수는 있지만, “어제 먹은 사과는 맛있었지만 내일 먹을 바나나는 덜 익었을 거야” 같은 복잡하고 시공간을 초월한 문장을 설명하지 못합니다.

2. 털 고르기에서 목소리로: 로빈 던바의 통찰

여기서 인류학자 로빈 던바(Robin Dunbar)가 등장합니다. 그는 언어의 탄생 이유를 ‘정보 전달’이 아닌 ‘사회적 결속‘에서 찾았습니다.

침팬지나 원숭이 사회를 보면 하루의 상당 시간을 서로의 털을 골라주는 데 씁니다 (Grooming). 이것은 단순한 위생 활동이 아닙니다. “나는 너를 좋아해”, “우리는 동맹이야”라는 친밀감의 표현이자 정치적 행위입니다. 털 고르기를 해주면 엔도르핀이 분비되어 기분이 좋아지고 신뢰가 쌓입니다.

문제는 집단의 크기입니다.

  • 원숭이: 집단이 작아서 일일이 손으로 털을 골라주며 관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 사피엔스: 집단이 150명(던바의 수)까지 커졌습니다. 이 많은 사람과 일일이 털 고르기를 하려면 하루 종일 밥도 못 먹고 털만 골라줘야 합니다. 시간적으로 불가능하죠.

3. 언어는 ‘원격 털 고르기’다

던바 교수는 여기서 인간이 획기적인 대안을 찾아냈다고 주장합니다. 바로 ‘목소리로 하는 털 고르기(Vocal Grooming)’, 즉 수다입니다.

언어는 물리적인 털 고르기보다 훨씬 효율적입니다.

  1. 다대일 소통: 손은 한 번에 한 명만 만질 수 있지만, 말은 동시에 여러 명에게 할 수 있습니다.
  2. 멀티태스킹: 밥을 먹으면서도, 걸어가면서도, 사냥을 하면서도 떠들 수 있습니다.
  3. 정보 공유: 단순히 기분만 좋게 하는 게 아니라, 중요한 정보를 섞어서 전달할 수 있습니다.

즉, 언어의 기원은 거대해진 집단 속에서 깨지지 않고 유대감을 유지하기 위한 ‘저비용 고효율의 사교 기술‘이었던 셈입니다.

4. 뒷담화(Gossip)의 힘: “누가 누구랑 사귄대?”

그렇다면 초기 인류는 모여서 무슨 이야기를 했을까요? 우주의 원리나 사냥 기술을 토론했을까요? 던바 교수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들의 주된 대화 주제는 바로 ‘뒷담화(Gossip)‘였습니다.

“누가 누구랑 바람을 피웠대.” “누가 사냥감 분배할 때 사기 쳤대.” “저 친구는 믿을만해.”

이런 ‘평판’에 대한 정보는 생존에 직결됩니다. 집단 내의 무임승차자(Free rider)나 배신자를 색출하고, 누구와 협력해야 할지 빠르게 파악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카페나 술자리에서 우리가 나누는 대화의 70~80%는 사회적 관계에 대한 이야기, 즉 가벼운 수다나 뒷담화입니다. 이것은 시간 낭비가 아니라,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끈끈한 접착제 역할을 합니다.

5. 또 다른 시선: 엄마의 자장가 (모성 언어 가설)

던바의 이론 외에도 흥미로운 가설이 하나 더 있습니다. 딘 포크(Dean Falk) 교수의 ‘모성 언어 가설(Mother Tongue hypothesis)‘입니다.

인간의 아기는 매우 미성숙하게 태어나서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 합니다. 그런데 엄마는 식량을 채집하기 위해 아기를 잠시 바닥에 내려놓아야 했습니다. 이때 불안해하는 아기를 안심시키기 위해 엄마는 멜로디가 섞인 소리를 냈을 것입니다.

“우쭈쭈, 엄마 여기 있어, 괜찮아~”

이런 감정적인 상호작용(Motherese)이 발전하여 언어가 되었다는 주장입니다. 언어가 ‘사랑’과 ‘돌봄’에서 시작되었다는 따뜻한 시각이죠.

6. 결론: 말은 마음을 잇는다

결국 언어의 기원이 사냥터에서의 작전 지시였든, 모닥불 앞에서의 뒷담화였든, 엄마의 자장가였든 간에 핵심은 하나입니다. 언어는 ‘타인과 연결되고 싶은 욕구‘에서 탄생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정보를 교환하는 기계가 아니라, 관계를 맺는 사회적 동물입니다.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더 똑똑해서가 아니라, 더 많이 떠들고 더 많이 소통하며 서로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언어라는 강력한 무기를 장착한 사피엔스에게 남은 건 없습니다. 그들은 옷을 입고, 예술을 하고, 바다를 건너 신대륙으로 나아갑니다. 다음 시간에는 빙하기의 추위를 이겨낸 인류의 발명품, ‘바늘과 의복‘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참고 문헌 및 더 읽어보기]

이 포스팅은 로빈 던바의 이론을 중심으로 작성되었습니다.

  1. Robin Dunbar – Grooming, Gossip, and the Evolution of Language
    • 언어 진화에 대한 사회적 뇌 가설과 뒷담화 이론을 집대성한 던바 교수의 명저입니다.
  2. Dean Falk – Finding Our Tongues
    • 언어가 엄마와 아기의 상호작용에서 시작되었다는 ‘모성 언어 가설’을 다룬 책입니다.
  3. Ted Talk – The history of human emotions
    • 언어와 감정 표현의 진화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강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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