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병의 역사와 가축: 인류는 왜 병들기 시작했나? (인수공통감염병의 기원)

수렵채집 시절의 인류는 거친 자연 속에서 맹수나 추위와 싸워야 했지만, 역설적으로 지금보다 전염병 걱정은 덜했습니다. 소규모로 이동하며 살았기에 배설물을 뒤로하고 떠날 수 있었고, 인구 밀도가 낮아 전염병이 돌아도 금방 사그라들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약 1만 년 전, 인류가 가축을 기르고 한곳에 정착하면서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습니다. 따뜻한 집, 풍부한 식량, 그리고 바글거리는 사람과 동물들. 이것은 세균과 바이러스 입장에서 보면 차려진 밥상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오늘은 인류가 동물 친구들을 얻는 대가로 치러야 했던 혹독한 수업료, 전염병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 위험한 동거: 종(Species)의 장벽을 넘다

신석기 시대의 마을 풍경을 상상해 보세요. 좁은 움집 안에서 사람들은 소, 돼지, 닭과 뒤엉켜 잠을 잤습니다. 동물의 젖을 짜서 마시고, 동물의 가죽을 벗기고, 동물의 배설물이 섞인 흙바닥 위에서 아이들이 뛰어놀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동물의 몸속에 살던 미생물들이 끊임없이 인간의 몸으로 침투할 기회를 엿보았습니다. 원래 특정 동물에게만 감염되던 병원체가 돌연변이를 일으켜 종(Species)의 장벽을 뛰어넘어 인간에게 감염되는 현상, 바로 ‘인수공통감염병(Zoonosis)’의 탄생입니다.

2. 가축이 준 죽음의 선물들

우리가 아는 치명적인 전염병의 역사는 대부분 가축에게서 시작되었습니다.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총, 균, 쇠>에서 이를 상세히 분석했습니다.

① 천연두 (Smallpox) – 소/낙타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을 죽인 천연두는 소의 ‘우두(Cowpox)’나 낙타의 천연두 바이러스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소와 밀접하게 접촉하던 목동들에게서 변이된 바이러스가 인류 전체를 공포로 몰아넣었습니다.

② 홍역 (Measles) – 소

홍역은 소에게 치명적인 전염병인 ‘우역(Rinderpest)’ 바이러스에서 갈라져 나왔습니다. 기원전 3,000년경, 대규모로 소를 사육하던 도시 국가들이 생기면서 이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적응한 것으로 보입니다.

③ 결핵 (Tuberculosis) – 소

소의 젖을 짜거나 고기를 먹는 과정에서 소의 결핵균(Mycobacterium bovis)이 인간에게 옮겨왔습니다. 이는 인간의 폐를 갉아먹는 무서운 질병으로 진화했습니다.

④ 독감 (Influenza) – 돼지와 오리

인간은 돼지, 오리와 함께 살면서 매년 변종을 일으키는 독감 바이러스를 얻었습니다. 돼지는 사람 바이러스와 조류 바이러스가 섞이는 ‘혼합 용기’ 역할을 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독감을 만들어냅니다.

3. 정착 마을: 질병의 인큐베이터

병원체가 넘어왔다고 해서 바로 전염병의 역사가 시작된 것은 아닙니다. 전염병이 계속 돌려면 숙주(사람)가 끊임없이 공급되어야 합니다. 수렵채집인처럼 50명 남짓한 집단에서는 전염병이 돌면 다 죽거나 다 면역이 생겨서 병원체도 함께 사라집니다.

하지만 신석기 시대의 농경 마을과 도시는 달랐습니다.

  • 인구 밀집: 수천, 수만 명이 다닥다닥 붙어 살면서 바이러스가 옆집으로, 옆 마을로 끊임없이 옮겨갈 수 있었습니다.
  • 위생 악화: 정착 생활은 필연적으로 엄청난 양의 쓰레기와 오물을 만들어냈습니다. 마을 한가운데 쌓인 분뇨는 콜레라나 장티푸스 같은 수인성 전염병의 온상이 되었고, 이를 노리고 쥐와 모기가 들끓었습니다.

즉, 문명화된 도시는 거대한 ‘질병 배양소(Incubator)’였습니다.

4. 면역이라는 보이지 않는 방패

이 끔찍한 전염병의 역사는 인류를 몰살시켰을까요? 초기에는 엄청난 희생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살아남은 사람들은 ‘면역(Immunity)’이라는 귀중한 방패를 얻었습니다.

대대로 가축과 부대끼며 살아온 유라시아 대륙의 사람들(구대륙인)은 천연두나 홍역에 대해 어느 정도 내성을 갖게 되었습니다. 어릴 때 앓고 지나가는 병이 된 것이죠.

하지만 이 가축화의 역사가 없었던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들은 달랐습니다. 훗날 콜럼버스가 신대륙에 도착했을 때, 유럽인들이 가져온(가축에게서 얻은) 병균들은 총칼보다 더 무섭게 원주민들을 학살했습니다. 잉카와 아즈텍 제국을 무너뜨린 진짜 무기는 스페인 군대가 아니라, 그들의 숨결에 섞여 있던 천연두 바이러스였습니다.

5. 결론: 끝나지 않은 전쟁

가축화는 인류에게 안정적인 식량을 주었지만, 동시에 질병이라는 그림자도 함께 주었습니다. 우리는 지금도 그 대가를 치르고 있습니다. 사스(SARS), 메르스(MERS), 그리고 최근의 코로나19까지, 현대의 신종 전염병들도 대부분 야생 동물이나 가축과의 접촉에서 비롯된 인수공통감염병입니다.

신석기 시대부터 시작된 인간과 바이러스의 군비 경쟁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이제 식량도 해결하고, 가축도 길렀고, (본의 아니게) 질병과 싸우며 면역력도 키웠습니다. 이제 인류는 비바람을 피하고 가족을 지킬 튼튼한 보금자리를 만드는 데 집중합니다. 다음 시간에는 움집에서 시작해 점차 복잡해지는 주거 문화, ‘움집과 마을의 형성’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참고 문헌 및 더 읽어보기]

이 포스팅은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와 최신 역학 연구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1. Jared Diamond – Guns, Germs, and Steel
    • 가축화가 어떻게 인류에게 치명적인 병균을 가져다주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세계사에 미친 영향을 분석한 챕터(가축의 치명적 대가)를 추천합니다.
  2. CDC (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 – Zoonotic Diseases
    •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에서 정의하는 인수공통감염병의 종류와 전파 경로에 대한 과학적 자료입니다.
  3. Science – Origins of human infectious diseases
    • 천연두, 홍역 등 주요 전염병이 어떤 동물로부터 유래했는지에 대한 계통학적 연구 논문입니다.

[이전 글 보기] 32. 가축의 역사: 인류는 어떻게 야생의 짐승을 식탁으로 불러들였나? (양, 염소, 돼지, 소)

[다음 포스팅 예고] 34. 움집과 마을의 형성 – 사생활의 탄생과 주거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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