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음악의 기원, 선사 시대 뼈 피리가 들려주는 소리

우리는 기쁠 때 노래를 흥얼거리고, 슬플 때 음악을 들으며 위로를 받습니다. 음악은 인류의 공통 언어라고도 하죠. 그렇다면 문자가 없던 아주 먼 옛날, 선사 시대 사람들도 우리처럼 음악을 즐겼을까요?

박물관 유리장 속에 전시된 앙상한 뼈 조각 하나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주고 있습니다. 구멍이 송송 뚫린 이 뼈 조각은 단순한 음식 쓰레기가 아니라, 인류가 만든 최초의 악기인 뼈 피리입니다.

오늘은 어두운 동굴 속에서 울려 퍼졌던 인류의 첫 번째 연주, 고대 음악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1. 4만 년 전, 독일 홀레 펠스 동굴의 발견

2008년, 독일 남서부의 홀레 펠스(Hohle Fels) 동굴에서 고고학자들은 조각난 뼈들을 발견합니다. 이 뼈들을 조심스럽게 맞춰보니, 길이 약 22cm의 가느다란 관 모양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약 4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가 만든 ‘독수리 뼈 피리‘였습니다. 왜 하필 독수리 뼈였을까요? 조류의 뼈는 날기 위해 속이 비어 있어(공기 주머니), 관악기로 만들기에 안성맞춤이었기 때문입니다.

놀라운 것은 이 피리의 정교함입니다.

  • 지공(손가락 구멍): 정확한 음정을 내기 위해 5개의 구멍이 일정한 간격으로 뚫려 있습니다.
  • 취구(입을 대는 곳): V자 형태로 매끄럽게 다듬어져 있어 입술을 대고 불기 편하게 만들었습니다.

현대 음악가들이 이 피리의 복제품을 만들어 불어본 결과, 오늘날의 ‘도-레-미-파-솔’과 거의 유사한 5음계(Pentatonic scale)를 연주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4만 년 전의 고대 음악이 현대의 동요나 민요와 비슷한 멜로디를 가졌을 수 있다는 사실, 소름 돋지 않나요?

2. 네안데르탈인도 연주를 했을까? (디비에 바베의 논란)

그렇다면 음악은 우리 호모 사피엔스만의 전유물이었을까요? 여기서 고고학계의 뜨거운 논쟁이 등장합니다.

1995년, 슬로베니아의 디비에 바베(Divje Babe) 동굴에서 약 5만 년~6만 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동굴곰의 대퇴골 조각이 발견되었습니다. 여기에는 두 개의 뚜렷한 구멍이 뚫려 있었습니다.

일부 학자들은 이것이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하기 전, 네안데르탈인이 만든 세계 최초의 피리라고 주장했습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고대 음악의 역사는 사피엔스 등장 이전으로 훨씬 더 거슬러 올라갑니다. 네안데르탈인에게도 예술적 감수성이 있었다는 강력한 증거가 되기 때문이죠.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그것은 악기가 아니라 하이에나가 뼈를 씹어 먹다가 남긴 이빨 자국일 뿐이다.” 현재까지도 이 ‘곰 뼈 피리’가 진짜 악기인지, 우연의 산물인지에 대한 논쟁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연구들은 네안데르탈인의 높은 지능을 고려할 때, 그들이 리듬과 소리를 즐겼을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습니다.

3. 왜 그들은 피리를 불었을까?

생존이 급급했던 빙하기에, 왜 그들은 귀한 시간을 들여 악기를 만들고 고대 음악을 연주했을까요? 여기에는 몇 가지 유력한 가설이 있습니다.

① 종교 의식과 샤머니즘

지난 시간에 다룬 라스코 동굴 벽화를 기억하시나요? 칠흑 같은 어둠 속, 횃불이 일렁이는 동굴 깊은 곳에서 샤먼(주술사)이 벽화를 배경으로 의식을 치릅니다. 이때 피리 소리와 북소리가 더해진다면 신비로움과 공포, 경외심은 극대화되었을 것입니다. 음악은 인간을 무아지경(Trance)에 빠뜨려 신과 접신하게 만드는 도구였습니다.

② 사회적 결속 (언어의 확장)

언어학자 로빈 던바가 말했듯, 언어가 ‘정보 전달’과 ‘뒷담화’를 위한 것이라면, 음악은 ‘감정의 공유‘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부족원들이 모여 함께 발을 구르고 노래를 부르며 “우리는 하나”라는 강한 유대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이는 집단 사냥과 생존 확률을 높이는 데 기여했습니다.

③ 짝짓기와 유희

다윈은 인간의 음악이 새들의 노래처럼 이성을 유혹하기 위해 진화했다고 믿었습니다. 아름다운 선율을 연주하는 능력은 훌륭한 두뇌와 섬세한 소근육을 가졌다는 증거이므로, 매력적인 짝으로 보일 수 있었을 것입니다.

4. 인내심의 산물, 상아 피리

홀레 펠스 동굴에서는 독수리 뼈 피리 외에 ‘매머드 상아‘로 만든 피리 조각도 발견되었습니다. 이것은 뼈 피리보다 훨씬 더 만들기 어렵습니다.

단단한 상아를 반으로 쪼개고, 속을 파내고, 다시 두 쪽을 붙여서 공기가 새지 않게 접착제로 마감해야 합니다. 이 복잡한 공정은 엄청난 시간과 기술, 인내심을 요구합니다. 그들이 이토록 공을 들였다는 것은, 당시 사회에서 고대 음악이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매우 중요하고 가치 있는 활동이었음을 시사합니다.

5. 결론: 인류, 소리에 의미를 담다

악기의 발명은 인류가 자연의 소리(바람 소리, 새소리)를 흉내 내는 것을 넘어, 스스로 소리를 ‘창조‘하고 ‘통제‘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3만 년 전의 어느 겨울밤, 모닥불 가에 둘러앉은 가족들을 위해 누군가가 뼈 피리를 불었을 것입니다. 그 소리는 빙하기의 매서운 바람 소리를 덮고, 사람들의 마음에 위안과 평화를 주었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는 이유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습니다.


[참고 문헌 및 더 읽어보기]

이 포스팅은 네이처(Nature) 등에 발표된 고고학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1. Nature (2009) – New flutes document the earliest musical tradition in southwestern Germany
    • 홀레 펠스 동굴에서 발견된 독수리 뼈 피리에 관한 연구 논문으로, 초기 인류의 음악 활동을 증명한 중요한 자료입니다.
  2. National Museum of Slovenia – Neanderthal flute
    • 논란의 중심에 있는 ‘디비에 바베’ 곰 뼈 피리를 소장하고 있는 슬로베니아 국립박물관의 소개 페이지입니다.
  3. Classic FM – What is the oldest instrument in the world?
    • 일반 대중을 위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악기와 고대 음악의 역사를 쉽게 정리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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