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돌과 순장: 고대인은 왜 거대한 돌무덤을 만들었나?

동물들은 동료가 죽으면 그 자리에 두고 떠납니다. 하지만 인간은 다릅니다. 우리는 시신을 씻기고, 옷을 입히고, 땅에 묻거나 화장을 하며 슬퍼합니다. 인류학자들은 이 ‘장례(Funeral)‘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라고 말합니다.

구석기인들이 시신 위에 꽃을 뿌리며(샤니다르 동굴) 죽음을 애도하기 시작했다면, 신석기와 청동기 시대로 넘어오면서 장례는 단순한 애도를 넘어 거대한 ‘권력‘과 ‘종교‘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 정점에 있는 것이 바로 거대한 돌무덤, 고인돌입니다. 오늘은 고대인들이 상상했던 죽음 이후의 세계, 그리고 한반도를 수놓은 거석 문화의 미스터리를 파헤쳐 봅니다.

1.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

고대인들에게 죽음은 ‘소멸’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육체는 죽어도 영혼은 계속해서 다른 세상(내세)에서 살아간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그래서 무덤은 시신을 처리하는 곳이 아니라, 죽은 자가 새로운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 머무는 ‘집’이었습니다. 그들은 무덤 안에 평소 쓰던 그릇, 도구, 무기, 그리고 장신구 같은 ‘부장품(Grave Goods)’을 가득 채워 넣었습니다. 저승 가는 길에 배고프지 말고, 가서도 잘 살라는 의미였죠. 이 부장품들 덕분에 고고학자들은 당시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복원할 수 있습니다.

2. 한반도, 고인돌의 왕국이 되다

전 세계적으로 거석 문화(Megalithic Culture)는 영국(스톤헨지), 프랑스(카르낙), 지중해 등 곳곳에 분포합니다. 하지만 고인돌(Dolmen)에 있어서만큼은 한반도가 단연 세계 최고입니다.

놀라지 마세요. 전 세계에 약 7만~8만 기의 고인돌이 있는데, 그중 약 4만 기(약 40~50%)가 남한과 북한에 몰려 있습니다. 가히 ‘고인돌 왕국’이라 불릴 만합니다. 특히 고창, 화순, 강화의 고인돌 유적은 그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왜 유독 한반도에 이렇게 많은 돌무덤이 만들어졌을까요? 청동기 시대 한반도는 농경이 발달하고 인구가 밀집하기 좋은 환경이었습니다. 강력한 부족장들이 등장했고, 그들은 자신의 권위를 과시하기 위해 마을 사람들이 모두 볼 수 있는 거대한 무덤을 원했습니다.

3. 어떻게 만들었을까? (권력의 증명)

고인돌의 덮개돌 무게는 적게는 수 톤에서 많게는 300톤에 이릅니다. 중장비도 없던 시절, 이 엄청난 돌을 어떻게 옮기고 쌓아 올렸을까요?

  1. 채석: 바위틈에 나무를 박고 물을 부어 불리는 방식으로 돌을 떼어냅니다.
  2. 운반: 둥근 통나무(굴림대)를 밑에 깔고 수십, 수백 명이 밧줄로 끕니다.
  3. 축조: 흙으로 언덕을 만들고 그 위로 덮개돌을 끌어올린 뒤, 받침돌을 세우고 흙을 파냅니다.

고고학자들의 실험에 따르면, 1톤의 돌을 옮기는 데 성인 남성 10~20명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100톤짜리 고인돌 하나를 만들려면 최소 1,000명 이상의 인력을 동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즉, 고인돌의 크기는 곧 그 무덤 주인이 살아생전 부렸던 ‘정치적 권력의 크기’를 보여주는 척도입니다.

4. 슬픈 역사, 순장(殉葬)

거대한 무덤 속에 부장품만 묻힌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살아있는 사람도 함께 묻혔습니다. 바로 ‘순장’이라는 비극적인 풍습입니다.

“주인님이 저승에 가셨는데, 누가 시중을 들고 누가 호위를 하겠는가?”

고대인들은 내세가 현세의 연장선이라고 믿었기에, 권력자가 죽으면 그의 부인, 신하, 호위 무사, 심지어 노비까지 죽여서(혹은 산 채로) 함께 묻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가야와 신라의 고분에서 순장의 흔적이 다수 발견됩니다. 경북 고령의 지산동 고분군(대가야)에서는 무덤 하나에 무려 40여 명의 순장자가 확인되기도 했습니다. 끔찍하고 잔인해 보이지만, 당시 사람들에게 이것은 왕을 끝까지 모시는 충성이자, 죽음 이후에도 삶이 계속된다는 강력한 종교적 믿음의 표현이었습니다. (순장은 훗날 신라 지증왕 때 법으로 금지됩니다.)

5. 결론: 돌에 새긴 영원한 삶

들판에 묵묵히 서 있는 고인돌은 단순한 바위 덩어리가 아닙니다. 그것은 죽음을 두려워하면서도, 그 너머에 또 다른 세상이 있기를 간절히 바랐던 고대인들의 염원이 응축된 타임캡슐입니다.

그들은 유한한 육체의 삶을 넘어, 거대한 돌처럼 영원히 기억되기를 바랐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그들의 무덤을 보며 그 시대를 상상하는 것을 보면, 그들의 소망은 어느 정도 이루어진 셈 아닐까요?

이제 구석기 사냥의 변화에 대해서 알아보고자합니다. 다음은 구석기 사냥의 진화에 대해 좀 더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참고 문헌 및 더 읽어보기]

이 포스팅은 한국 고고학의 연구 성과와 유네스코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1. UNESCO World Heritage Centre – Gochan, Hwasun and Ganghwa Dolmen Sites
    • 유네스코에 등재된 한국의 고인돌 유적에 대한 공식 설명과 등재 기준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2. Cultural Heritage Administration – Megalithic Culture of Korea
    • 국가유산청에서 제공하는 한국의 거석 문화와 고인돌 축조 과정에 대한 교육 자료입니다.
  3. National Museum of Korea – Bronze Age & Goindol
    • 국립중앙박물관의 청동기 시대관에서 고인돌 출토 유물과 당시 생활상을 엿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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