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밀, 보리, 쌀)을 길들여 배고픔을 면한 인류에게는 여전히 부족한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단백질’**과 **’힘’**이었습니다.
사냥은 여전히 위험했고 성공률이 낮았습니다. 농사일은 인간의 근력만으로는 감당하기 힘들 만큼 고되었습니다. 그래서 인류는 또 한 번의 거대한 도전을 감행합니다. 숲속을 뛰어다니는 저 짐승들을 잡아먹는 대신, 울타리 안에 가두고 키우기로 한 것입니다.
개(Dog)가 인간의 친구가 된 지 수천 년 후, 이제 식량과 노동력을 위한 가축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오늘은 인류의 삶을 바꾼 위대한 네 가지 동물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1. 왜 하필 이들인가? (안나 카레니나 법칙)
지구상에 수많은 동물이 있지만, 가축이 된 동물은 극소수입니다.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이를 **’안나 카레니나 법칙’**으로 설명합니다. “가축화할 수 있는 동물은 모두 엇비슷하고, 가축화할 수 없는 동물은 가축화할 수 없는 이유가 제각각이다.”
가축이 되기 위해서는 까다로운 조건을 모두 만족해야 합니다.
- 식성: 인간과 먹이 경쟁을 하지 않거나(초식), 아무거나 잘 먹어야(잡식) 함.
- 성격: 성질이 온순하고 인간을 공격하지 않아야 함. (얼룩말이나 곰이 탈락한 이유)
- 성장 속도: 빨리 자라서 새끼를 낳아야 함. (코끼리가 탈락한 이유)
- 사회성: 무리 생활을 하며 우두머리를 따르는 습성이 있어야, 인간이 그 우두머리 행세를 하며 통제할 수 있음.
이 까다로운 조건을 통과한 모범생들이 바로 양, 염소, 돼지, 소였습니다.
2. 최초의 가축: 양과 염소
가장 먼저 인류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온 것은 **양(Sheep)**과 **염소(Goat)**였습니다. (약 1만 년 전, 비옥한 초승달 지대)
이들은 덩치가 작아 통제하기 쉬웠고, 인간이 먹지 못하는 거친 풀이나 나뭇잎을 먹고도 잘 자랐습니다. 특히 험준한 산악 지대나 건조한 땅에서도 생존력이 뛰어났습니다. 초기 인류에게 이들은 **’걸어 다니는 도시락’**이었습니다. 배가 고프면 언제든 잡아서 고기를 얻을 수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곧 인류는 이들을 죽이지 않고도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3. 움직이는 쓰레기통: 돼지
**돼지(Pig)**는 조금 달랐습니다. 그들은 풀보다는 곡물이나 잔반을 좋아하는 잡식성입니다. 인간과 먹이를 두고 경쟁할 수도 있었지만, 돼지에게는 최고의 장점이 있었습니다. 바로 **’무서운 번식력’**과 **’성장 속도’**입니다.
돼지는 한 번에 10마리 가까이 새끼를 낳고, 6개월이면 다 자랍니다. 게다가 인간이 먹고 남은 음식물 쓰레기나 인분을 아주 훌륭한 고기(단백질)로 바꿔주는, 효율 좋은 **’환경미화원’**이자 **’고기 공장’**이었습니다. 비록 우유나 털을 주지는 않지만, 오로지 고기 맛 하나로 가축의 역사에서 확고한 자리를 잡았습니다.
4. 고대의 트랙터: 소(Cattle)
가축화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소(Cattle)**입니다. 소의 조상은 **’오록스(Aurochs)’**라는 거대한 야생 소였습니다. 몸무게가 1톤에 육박하고 성질이 매우 사나웠던 이 맹수를 길들인 것은 인류 역사상 가장 대담한 시도였습니다.
소를 길들이는 데 성공하자 인류는 천군만마를 얻었습니다. 소는 고기와 가죽을 주는 것을 넘어, 인간보다 훨씬 강력한 **’힘(Labor)’**을 제공했습니다. 쟁기를 끄는 소 한 마리는 사람 5~6명의 몫을 해냈습니다. 덕분에 인류는 단단한 땅을 깊게 갈아엎어 경작지를 획기적으로 넓힐 수 있었습니다. 소는 고대 농업 사회의 **’트랙터’**이자 **’엔진’**이었습니다.
5. 2차 산물 혁명: 살려두는 것이 더 이득이다
처음에 인류는 가축을 잡아먹기 위해 키웠습니다(1차 산물). 하지만 기원전 4,000년경, 인류는 중요한 사실을 발견합니다. 동물을 죽이지 않고 살려두면, 평생 동안 지속 가능한 자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요.
고고학자 앤드류 셰라트(Andrew Sherratt)는 이를 **’2차 산물 혁명(Secondary Products Revolution)’**이라고 불렀습니다.
- 양털(Wool): 양을 죽여 가죽을 얻는 대신, 털을 깎아 옷을 만들었습니다. 섬유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 우유(Milk): 죽어서 고기 20kg을 주는 염소보다, 평생 동안 우유 200kg을 주는 염소가 훨씬 이득임을 알았습니다.
- 노동력(Traction): 소나 말을 이용해 짐을 나르고 밭을 갈았습니다.
6. 유전자를 바꾼 식습관: 우유 소화 능력
우유를 먹기 시작하면서 인간의 몸도 변했습니다. 원래 포유류는 젖을 떼면 우유를 소화시키는 효소(락타아제)가 사라집니다. 하지만 목축을 하는 유럽과 중동 지역의 인류에게서 어른이 되어서도 우유를 소화할 수 있는 **’락타아제 지속성 돌연변이’**가 나타났고, 이것이 생존에 유리하여 널리 퍼지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오늘날 라떼를 마실 수 있는 것은, 수천 년 전 조상들이 배탈을 참아가며 우유를 마신 덕분입니다.
7. 결론: 풍요 뒤에 숨겨진 그림자
양, 염소, 돼지, 소의 가축화로 인류는 탄수화물(곡물)과 단백질(고기/우유)의 완벽한 식단을 완성했습니다. 또한 소의 힘을 빌려 잉여 생산물을 폭발적으로 늘렸고, 이는 거대 문명과 국가의 탄생으로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빛이 강하면 그림자도 짙은 법입니다. 좁은 우리에 수많은 동물과 사람이 뒤엉켜 살면서, 인류는 이전에 없던 새로운 공포와 마주하게 됩니다. 바로 동물에게서 인간으로 옮겨오는 치명적인 질병, **’인수공통감염병’**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가축화가 불러온 재앙, **’전염병의 시작’**과 그것이 인류 면역계에 미친 영향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참고 문헌 및 더 읽어보기]
이 포스팅은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이론과 고고학적 ‘2차 산물 혁명’ 개념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 Jared Diamond – Guns, Germs, and Steel
- 가축화의 조건(안나 카레니나 법칙)과 주요 가축 5종의 중요성을 역설한 필독서입니다.
- Nature – The origins of milk drinking
- 인류가 언제부터 우유를 마시기 시작했는지, 그리고 유전자 변이가 어떻게 일어났는지 밝힌 연구 기사입니다.
- Britannica – Domestication of Livestock
- 각 동물별(소, 돼지, 양, 염소) 가축화 시기와 장소, 과정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제공합니다.
[이전 글 보기] 31. 농업의 기원: 인류는 어떻게 야생 잡초를 ‘곡물’로 개조했나? (밀, 보리, 쌀)
[다음 포스팅 예고] 33. 전염병의 시작 – 가축과 함께 살며 생긴 인수공통감염병
“가축의 역사: 인류는 어떻게 야생의 짐승을 식탁으로 불러들였나? (양, 염소, 돼지, 소)”에 대한 1개의 생각